제 목 : 여름 단상(에세이)

작성자 : 최우용

날 짜 : 2004-06-17 오후 10:06:00 (조회 :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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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그마한 잡지에 게재한 저의 에세이 입니다.
부끄럽지만 여기에 올려봅니다.




자전거 탄 풍경



어린시절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춘기가 지나 철이 들면서부터 항상 내 인생의 전환기에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뒤 자연스럽게 여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잘 다니고 있던 대학을 그만두고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여름이었고, 지금의 아내에게 처음 사랑을 느낀 것도 여름 소나기에 몸을 피하고 있던 지리산 계곡의 바위아래에서였고, 그렇게 건강하시던 어머님이 쓰러지신 것도 여름의 끝자락에서였다. 그리고 유학생활의 추억이었던 ‘자건거 탄 풍경’을 만든 것도 여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매년 여름이 오면 긴장과 기대 속에서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유학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유학 2년차의 여름. 결혼하고 유학을 온 우리에게는 큰 아들 주영이가 태어나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유학 오면서 준비해 온 많지 않은 노잣돈과 일본에서 받는 장학금만으로는 항상 빠듯한 생활이라, 조금의 여유조차 당시엔 사치처럼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할 수도 있었지만 식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매일 집에서 저녁을 먹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일찍 설거지를 끝내고 가까운 전철역까지 산보를 가자고 제안하였다. 당시 우린 동경에서 전철로 약40분 정도 떨어진 ‘토코로자와’라는 시에 살고 있었는데, 이곳은 영화 ‘토토로’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한 조그마한 소도시였고, 우린 동경에 비해 월등히 싼 집값에 매력을 느껴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걸어서 15분 정도의 전철 역사 안에는 조그마한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고 우린 자연스럽게 거기에 자리를 잡고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마실 동안 아내는 주영이를 안고 자작한 동화를 예기하고 있었다. 커피가 반쯤 남았을 때, 아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역할분담을 하였다. 아내는 내가 마시다 만 반잔의 커피를 폼나게 마시고 있었고, 나는 동화의 끝부분을 어렵게 이어갔다. 자판기 커피 한 잔에 백 엔(약1300원 정도)이나 해 두 잔을 뽑아 마시기엔 사치 같은 생각이 들었었고, 또 백 엔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아내의 설득에 우린 커피 한잔이지만 두 잔의 여유로움을 누리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 우린 특별한 일이 없으면 1백엔의 여유를 마시기 위해 매일 산보를 갔다. 다만 한 가지 변한 것은 열대야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세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갔던 것이다. 나는 운전을 했고 아내는 조수석에서 주영이를 안은 채로, 나의 두 허리를 꼭 쥐고 있었다. 간 혹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정한 눈길을 보내주기도 하셨다. 그렇게 그 해 여름은 우리 세 식구의 행복을 지켜주고 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 학기에 제법 큰 장학금을 수령하게 되고, 석사논문준비로 인해 학습량이 많아지면서부터, 또 주영이가 성장해 세 사람이 함께 탈 수 없는 물리적인 이유도 생기면서, ‘자전거 탄 풍경’은 추억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8년간의 유학생활 동안 많은 추억들이 있었지만 꼭 하나의 추억을 뽑으라고 하면 나는 항상 그 해 여름밤 자전거 탄 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조심조심 운전하던 젊은 아빠의 모습과, 엄마, 아빠의 중간에서 깔깔거리며 웃던 주영이의 얼굴, 그리고 행복하게 미소 짓던 아내의 얼굴을. 귀국 후 모교의 교수가 되어 재직하면서 인간적 갈등과 사회적 유혹에 부딪힐 때 마다 나는 항상 그 해 여름밤을 기억한다. 자건거 탄 세 사람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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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단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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