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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 날입니다.
저에게도 맑은 5월의 하늘 같은 눈을 가진 멋진 어린이(차남)가 있습니다(차남 생일이 5월3일이라 생각이 많이 나네요. 그리고 물론 장남도 멋진 중학생입니다...아들들 자랑해 바보 같지만 애교로 봐 주세요^^. )만,
역시 계절의 여왕은 5월인 것 같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더 없이 맑은 후쿠오카의 하늘을 보면서 아들 생각을 좀 했습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일본 재계 30위 안에 드는 갑부이자 성공한 재일사업가인 한창우 회장께서 우리 대학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몇 차례 한국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만,
맨 주먹으로 차별을 딛고 오늘의 성공을 이룩한 재일교포(얼마전 여러이유로 국적은 변경하였나 봅니다) 출신 사업가 입니다.
한 편의 영화같은 이분의 인생역정은 아래 특집 방송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http://www.chmbc.co.kr/tv/sub04.asp#
강연 일정은, 오는 6월4일이나 5일이고
강연주제는, 기업의 윤리와 준법정신(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감이 필요하다,
좀 더 힘을 내자, 고 생각하는 분들은
부디 이 특강을 듣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몇 백억원의 빚에 자살까지 결심한 분이 인생 후반에
대역전을 하는 드라마 같은 얘기가
회장님의 말씀을 통해 직접 전해들을 수 있을 지 모릅니다.
법과대학에서 오래전부터 공들여 왔던 회장님의 강연인 만큼
여러분의 관심과 많은 참석
그리고 뜨거운 환영을 바랍니다.
아래 글은 신문에 소개된 한회장님에 관한 기사입니다.
참고바랍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신동아 2005년 9월]의 특집기사를 참고 하
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러분.
한회장님의 강연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2009. 5.5.
후쿠오카에서
최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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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기사]
‘세계 최대 파티’ 여는 한창우 회장
한중기 기자 hana@gnnews.co.kr
오는 22일 일본 도쿄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지바(千葉)현 마쿠하리(幕張) 메세 국제전시장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세계 최대의 파티’로 기록될 이날 행사에는 일본과 한국 등 세계 각국 귀빈 1만여명이 참석한다. 요리를 나르는 종업원 수만 해도 1500명이 동원된다. 1만여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연회장이 만들어져 ‘한자리 동시 최대 인원 식사’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를 예정이다. 마술쇼, 한·일 성악가 초청 콘서트, 디스코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이날 행사 비용은 총 15억엔(150억원). 참석하는 인사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와 공노명·김태지 전 주일대사, 여야 국회의원 등 한일양국의 저명인사가 참석한다. 특히 이 자리에는 김수영 사천시장도 참석한다.
매출 1조엔 돌파 기념
세계 최대의 파티를 마련한 주인공은 우리고장 사천 출신 재일동포 한창우씨. 일본 파친코업의 선두주자 ‘마루한’의 회장이다. 일본 파친코 업계 최초로 지난해 매출 1조엔을 돌파한 기념으로 깜짝 파티를 마련한 것이다. ‘마루한’은 일본어로 동그라미를 뜻하는 마루(丸)와 자신의 성 ‘한’을 붙여낸 합성어이다. 파친코 구슬, 골프공, 볼링공 등 동그란 것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붙였다 한다.
‘마루한’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778억엔(약 12조7000억), 순이익은 210억엔이다. 일본 후지TV 매출액보다 두배나 많다. 일본 전역에 180여개의 점포를 두어 일본 최대 놀이공원 도쿄디즈니랜드 입장객의 4배 가까운 연인원 9000만명을 끌어들인 결과다. 한 회장은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일본내 24위에 올랐다. 그의 순자산은 11억달러(약 1조1000억원). 롯데 신격호 회장 일가의 순자산이 17억달러,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순자산이 15억달러임을 감안하면 한 회장의 재력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삼천포 앞 바다에서 밀항선에 몸을 실은 14살 어린아이가 60년만에 이룬 꿈은 단순히 억척 같은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독한 열정으로 대학공부까지 마치고, 26살에 ‘마루한’을 설립했다가 40대 초반에 60억엔의 빚을 떠안고 파산했지만, 다시 일어나 오늘날 크게 성공한 것은 온갖 차별을 극복한 여느 재일동포의 성공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공기는 남다르다. 60년 동안의 피 눈물과 정도경영을 담보로 한 개척자 정신이 돋보인다. ‘하면된다’는 단순한 의지보다 ‘어떻게 하면된다’는 슬기를 발휘한 경영자로 평가할만하다. 대부의 꿈을 이룬 비결은 먼저 직원 교육이었다. 파친코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고객중시 정신으로 무장한 직원들의 경쟁력을 앞세워 불식시킨 것이다. 예의·윤리·서비스정신은 물론, 회사의 이념과 비전을 공유하도록 직원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 직원들에게 자신의 아이·손자들을 취직시키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어둡고 침침하던 파친코장을 카페분위기로 만드는 계기가 됐고, 그 전략은 주효해 입장객 9000만명을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수입과 지출을 실시간으로 전산처리해 세무당국이 감탄할 정도의 투명경영을 펼치고 있다. 특히 ‘마루한’을 곧 상장할 예정인데, 상장 목적이 특이하다. 돈을 벌거나 자금조달 목적이 아니라 회사의 투명성을 사회에 알리고 일본에서 60년 동안 한 일에 대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란다. 여기에다 문화재단을 통해 순이익 1% 사회환원을 실천하고 있다. 이쯤되면 한 회장의 성공기는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마루한’에서 배우자
수구초심이랄까.‘마루한’ 한 회장은 얼마 전 고향을 방문해 공무원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성공기를 몇차례 강연하기도 했고, 고향과 조국에 뭔가 남기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재일 한국인들도 일본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일본 주류사회에 편입해야 한국인들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다. 국적은 일본이더라도 우리는 영원한 한민족”이라는 신념을 가진 그가 고향을 위해 기여할 여지는 매우 많다. 때맞춰 고향 사람들을 일본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얻을 것은 따로 있다. 장기적인 불황과 극심한 실업난 속을 살아가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그의 성공기는 시사하는 바 많다. 젊은이들에겐 꿈과 희망, 열정의 메신저가 될 것이고, 기업가에겐 진정한 기업가 정신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한번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Write : 2005-06-19 19:13:19
[경남일보 기사]2
(주)마루한 한창우(사진·韓昌祐·78)회장의 일본 이름은 ‘한창우’다. 재일교포가 일본으로 국적을 바꿀 때는 으레 한국 이름을 응용한 이름이나 전혀 다른 한자를 쓰기 마련인데 한 회장의 이름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다. 2001년 한 회장과 함께 일본 국적을 취득한 가족들 모두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쓴다. ‘일본 굴지의 재일 실업가가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일본 사회가 떠들썩했지만 정작 한 회장은 “당연한 일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포브스(Forbes)가 선정하는 일본의 30대 부호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린 한창우 회장이 17일 경상대학교를 찾았다. 지난 2005년에 이어 두 번째. 이날 오전 하우송 총장과 만난 한 회장은 박물관, 영어전용강의동, 공동실험실습관 등 경상대 내 시설을 둘러본 뒤 학생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나의 경영철학-기업의 도덕성과 윤리성’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앞서 밝혔듯 일본 내에서 한 회장의 입지는 대단하다. (주)마루한의 연 매출이 1조8600억엔(円)에 달하는 점도 그렇지만 대외적인 부문에서도 두드러지게 활약해왔다. 특히 타고난 국제 감각을 앞세워 한국과 일본, 미국의 경제 교류를 앞당기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 나라에서 표창한 훈장과 대통령상, 명예시민증은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60년이 넘었지만, 한 회장에게 모국(母國)은 ‘어려울 때마다 버팀목이 됐던 고향’이자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1931년 삼천포에서 태어나 삼천포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한 한 회장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영일사전 한 권과 쌀 두 되만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 회장은 “해방 당시 모두가 그랬듯 궁핍한 생활에 정치적인 충돌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며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일본인도 취업이 어려운 시대라 더욱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시작한 일이 지금의 (주)마루한이 있게 한 파친코 사업이었다. 1972년 설립된 (주)마루한은 현재 일본 전역에 220개 점포(기계 13만대)를 두고 있으며 종업원만 1만 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상장건설사의 주식 인수를 통한 경영권 확보를 비롯해 외식사업·볼링장·골프장·해외개발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등 세계 최고의 레저산업을 꿈꾸고 있다. 성공한 뒤에도 모국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였다. “시설을 바꾸는데 써달라”며 삼천포초등학교에 2억원을 선뜻 건넨데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한국 정부에 10억원을 기부했다. 사비 30억원을 들여 설립한 한국문화연구진흥재단은 한국 문화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한국학이 개설된 전 세계 대학에 전달하는 소중한 문화 알림이다. 사업가로 성공한 이후에도 수행비서나 경호원 한 명 없이 출장을 다니는 한 회장이지만 유독 모국과 관련된 일에는 ‘큰 손’이 된다는 게 주위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 이 정도면 “모국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싶다”는 한 회장의 마음이 건다짐은 아닌 셈이다. 한국 이름을 고집할 당시에는 일본 정부와 갈등도 있었다. 헌법이냐, 행정이냐를 두고 옥신각신하기도 했지만 “민족과 국적은 다른 차원”이라는 한 회장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한 회장은 ‘우리 민족이 우리나라 문화를 지킬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스스로 ‘작은 발걸음’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그 꿈을 위해 한 발씩 내딛는 것이 대단하다.
2008-11-18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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